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로동 고분군 (문단 편집) == 조사내용 == 대구지역에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고총 고분군 가운데서 가장 양호한 상태로 잔존해 있는 고총 고분군[* [[달성 고분군]]은 개발과정에서 사라졌고 [[구암동 고분군]]은 도굴의 피해가 극심하다. 욱수동 고분도 규모가 가장 컸지만 유물만 보존되고 개발과정에서 사라졌다.]으로 고분군의 서쪽으로는 [[금호강]]이 흐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18호분과 22호분이 조사되었고 고고학적 발굴조사가 활발해지는 80년대 즈음하여 [[경북대학교|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갑, 을호분에 대해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후 1978년 사적지정이 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가 되었다. 정비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는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91호와 93호를 발굴조사하였다. 모두 장방형의 평면형태를 갖는 석곽을 채용하고 있으며, 하나의 석곽 안에 격벽(隔壁)을 두어 주곽(主槨)과 부곽(副槨)을 구분하였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불로동 갑호분에서는 상어뼈가 출토된 바 있다. 조선시대 제례 문화에 있어 [[경상북도|경북지역]]의 특징으로 [[돔베기]]를 올리던 것의 시원적인 양상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한다. 대구지역의 분지는 [[영남|영남지역]] 내에서 가장 거대한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여담으로 대구가 지형적으로 성장에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어 [[신문왕]]대에 대구(달구벌)로의 천도를 시도한 적이 있다.] 다른 분지들이 딱 하나의 집단이 자리하기에 알맞은 크기인데 반해 대구의 분지는 하나의 세력만이 차지하기에는 큰 분지이다. [[청동기시대]] 대구 분지의 고인돌 및 관련 유적 분포가 [[삼국시대]] [[신라]]의 고총 고분군의 분포와 유사한 점이 주목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원삼국시대]]의 소국 또는 소집단을 상정할 수 있는 근거가되는 [[토성(동음이의어)#s-2|토성]](봉무토성, 검단토성)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 지속적으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취락이 형성된다. 지금의 대구 [[이시아폴리스]] 자리가 바로 봉무동 취락 유적이 있던 곳이다.[* 이시아폴리스 한켠에 모형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